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아래아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지 않기
시작한 것은...
가장 최근에 쓴 것이,
작년 11월 중순 경이었던
것 같다. 서울시 산하
관공서 중 한 곳에서 네트워크 및 전산 유지보수 일을
하고 있을 때는 한글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그룹웨어가 한글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고, 기본적으로
국내 관공서에서는 아래아 한글을 많이 사용을 하고
있다. 그런 탓에 그곳의
유지보수 일을 하던 나는 매일매일 한글을 접하게 되고
수시로 설치하고 삭제하고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하면서
아래아 한글에 친숙해져 있었다.
내가 아래아 한글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로 기억된다.
사촌에게서 얻게된 286
AT 컴퓨터 하드디시크 한편에 깔려 있던 한글
1.5 버전을 나는 기억한다.
흑백 허큘레스 VGA를
사용하고 있던 내게, 흑백이
어울어져 떠올라 있는 한글 1.5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선했다. 그
이후 전화선을 이용한 PC 통신에
빠져들었다. PC 통신을
하면서 게시판과 자료실에는 HWP
확장자를 가지고 있는 많은 문서파일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더욱 친숙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 때는 CAP
형식의 아스키 파일도 한창 떠돌아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PC 통신에서
많은 작가들이 소설을 연재했고,
이 소설들을 근간으로 해서 책으로 출간되기 까지
했다. 이 당시에 크게
유행한 소설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퇴마록’이었다.
매일 밤마다. 나우누리에
접속해서 올라오는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원래는 하이텔에 연재된 소설이었지만,
누군가가 나우누리로 퍼왔다.
^^;
그렇게 PC통신을
하면서 나는 한글에 익숙해져갔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컴퓨터는 내
생활 속에서 뺄래야 뺄 수 없는 작은 한 부분이 되었다.
컴퓨터를 다른 이들보다는 많이 만져본 이유만으로
선생님들의 한글문서 작업을 돕기도 하고,
학교 교지 편집부에 투입되기도 했다(말이
교지편집부였지, 나는
기자들이 선별해준 글들을 한글문서로 입력하는 작업을
하는 단순한 타이핑맨이었다.
그래도 교지 한켠에 한토막의 소감을 적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격스럽기도 했다).
http://orumi.egloos.com/1676122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한글로
리포트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 때 한메일을
많이 썼었다. 종종 교수님들
중 몇몇 분들은 자신의 학교메일주소로 리포트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 때
전제조건은, 아래아
한글(.HWP)로 작성해서
제출할 것. 나역시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별 거부감없이 아래아
한글로 문서를 작성하여 교수님께 제출했다.
군대에 가서도 한글 사용은
계속 되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행정병으로 빠질뻔 했다. 행정병이
땡보라고 말하며 나를 꼬드기던 선임 행정병은,
나의 튼튼한 허리를 유심히 지켜보던 포반 분대장들에
의해 나를 빼앗기고 말았다.
내 다음 후임이 행정병이 되었다.
행정병이 된 그녀석은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 까지 각종 문서 작업 및 행정처리를 하기
일쑤였다. 지금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그
때만 해도 잔손도 많이 가고 복잡하게만 보였다.
매일 12시가 넘어서
피곤한 언굴로 잠자리에 드는 후임을 보면서 박격포병으로
빠지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종종 일손이 부족할 때면(물론
내가 분대장을 하면서 일직하사 임무를 수행할 때만)
도움을 주기 위해 열심히 한글을 입력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때는 군대 내에 인트라넷을 통해서 각 사단별로 사이트가
구축되어 있고, 그 사이트에
게시판에 어느 작가사병의 청춘로망버라이어티연애소설이
연재가 되고 있었다. 그
녀석도 기본은 행정병일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군에 있을 당시에도 컴퓨터는 일반 사병들이
사용하기는 어려웠었으니까.
그들의 청춘로망버라이어티연애소설을 읽으며
즐거운 일직근무 시간을 보낸 듯 하다.
출처 : http://ask.nate.com/popup/print_qna.html?n=6015563
군대에서 돌아와 복학을 해서는
한글을 매일 쓸 수 있었다.
학교에서 한글에 대한 학교 라이센스를 구매를
해서 교내 FTP 서버에서
제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학생이면 누구나
무료로 한글을 다운로드 받아서 설치하고 실행할 수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대학들이 이렇게 한글, 오피스,
운영체제와 포토샵 등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를 졸업할 때 쯤에 시작한
나는 역시나 일과 관련하여 한글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그룹웨어를 사용하는
관공서였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위에서 ActiveX 형태로
설치되고 실행되는 특성 탓에 윈도우 보안 업데이트,
악성코드나 애드웨어 등의 영향을 받아 수시로
서울 전지역적으로 장애를 일으켰다.
그래서 그 장애를 원격으로도 처리하고 원격으로
안되면 직접 방문하여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수많은 컴퓨터들에서 한글을 지웠다가
설치하고 업데이트하는 반복작업들을 수도 없이 한
듯 하다.
그러다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 한글은 내 손에서 멀어지기
시자한 듯 하다. 관공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관들에서는 MS
오피스 계열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픈오피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것도 오픈 오피스
위에서 실행되고 있다. 그리고
스프링노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바 전문가(Expert와
전문가의 차이는 뭐지?) 과정을
듣게 되면서 많은 리소스를 차지하는 한글 대신에,
검색을 하기 위해 띄울 수 밖에 없는 브라우저
안에서 실행되는 스프링노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스프링노트는 손쉽게 어느정도 형식을 가지고
있는 문서를 손쉽게 작성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간단하게 실행시킬 수 있는 노트패드가
있었다. 대략적인 내용들을
노트패드에서 작성한 다음에 이를 스프링노트에 붙여넣기
하는 식으로 문서작업을 하면서 나는 한글과 영영
결별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한글에서 작성한 내용을
브라우저의 페이지에 옮겨 붙일 때,
다른 워드프로세서들과는 다른 형태로 저장이
되는 탓도 있었다. 교육장에서
유료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도 나름
선택압으로서 작용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작년즘 부터인가
한글을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고,
그것이 내게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내
자신의 문서작업 패턴이 바뀐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래아 한글
자체의 문제도 존재한다. 아래아
한글로 작성된 문서는 다른 워드프로세서에서 열어볼
수가 없다. 아래아 한글
문서와 관련된 라이브러리가 공개되어 있지 않은 탓에
다른 워드프로세서들에서 아래아 한글 열기를 제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표준 문서양식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도태되다시피한
탓에 아래아 한글은 지금의 지위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해외의 쟁쟁한
프로그램들과 경쟁을 하고 있는 국산 프로그램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안철수씨로
유명한 안철수 연구소와 V3,
다른 한 곳은 이찬진 씨가 있던 한글과 컴퓨터와
아래아 한글 시리즈가 있다.
V3와 안랩은 여전히 선전을 하면서 점점 그 영역을
해외까지 뻗쳐나가며 발전하고 있는데 반해서 아래아
한글 시리즈는 점점 국내 시장 조차 MS
오피스 에 빼앗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크게 개선되지 않는 아래아 한글의 사용자
환경과 점점 무거워지고 있는 프로그램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주류에서 밀려난다는 것은
도태된다라고 생각을 한다.
이미 아래아 한글은 어느순간 부터 주류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점점
도태되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과거에 많은 이들이 외쳤던 아래아 한글 라이브러리의
공개, 적극적인 마케팅과
진화하는 사용자 사용환경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아래아
한글은 어느사이엔가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점점 가벼워지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사용자들의 희망과 반대로 나가고 있는 아래아
한글. 사용자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단순한 영역지키기
만으로는 그 자신의 발전에 한계에 다다를 것이며,
그들 자신도 그런 사실을 분명 깨닫고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