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몬에 관한 보고서/허니몬의 행성, 허니스(Honies)

동물은 자신만의 영역을 가진다. 생물학 쪽에서는 이것을 Niche(생물학적 지위라고 해석하기도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어 다양한 의미 해석된다)라고 한다.

지구의 운명을 놓고 싸웠던, 적대적인 진영인 오토봇과 디셉티콘 군단의 결전처럼 적대적으로 다투기도 하고, 인간과 오토봇처럼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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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니치라는 녀석은 그 사람이 자신의 개인성을 지키기 위한 영역으로, 흔하게들 '선'이라는 이미지로 구체화된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영역의 경게를 긋는 선을 가지고 있다. 이 선은 특별한 마법이 걸려 있어서, 그 사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선이 그려진 영역의 넓이는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그 모습도 제각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이 선의 영역에 막혀서 상대에게 다가가지 못해 답답해하고, 누군가는 자신만의 영역을 두드리는 낯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그 관계가 형성되는 경계'선'의 영역은 수많은 사람들과 접하는 입체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최근, 나는 한 사람의 마음의 경계를 두드리고 있다. 경계를 두드리면서 상대방이 친 선을 넘어서기 위해 신중한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상대를 면밀히 살펴보고 그 사람이 어떤사람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 작업은 서두르면 그대로 틀어져서 상대방의 마음을 꽁꽁 닫아버리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런 것은 비단 남자와 여자와의 관게에서만이 아니라,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청년과 장년, 사회와 국민, 국가와 국가 등 다양한 집단(그 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이고, 인간에서 조금 더 감성이 담긴 존재로서 '사람'을 선호한다) 관계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게를 허물고, 그 사람의 곁에 다가간다는 것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들의 곁에 다가서고(그건 어디까지나 주변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입장에서 일 뿐이다.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혹은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상대의 경계를 허물려고 노력한 것이고 그 결과만 주변에서 보고 있을 뿐), 자신은 다른 사람의 곁에 다가서거나 누군가가 자신의 곁에 다가오는 것을 경게하여 신경을 곤두세우고 날카롭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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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keizie/257376738/

 

마음의 벽(혹은 선)을 부수는 것은 타이밍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견고했던 사람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그 때가 있다. 그때 잽싸게 그 벽을 허물고 거기에 자신이 지나들 수 있는 문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의 과정은 사람마다 그 차이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어떤 이는 부수고 그대로 둔다. 그렇게 방치된 마음의 벽은 그 벽을 허문 사람이 떠나고 나면 흉물스럽게 남는다. 어떤 이는 부서진 공간에 출입구를 만들고 그 주변을 아름답게 정돈을 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열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떠난 뒤에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그 문을 통해 다른 이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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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amin.org/xe/member/18910/page/4

 

사람과 사람사이,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시점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어울리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자신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 반복 속에서 실패를 두려워해서 사람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일을 주저하고 두려워한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게를 만들어갈 때에도 두려워하고 망설이고 움추려들 수 밖에 없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 있을 때, 사람다워진다. 

요즘은 이상하게...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거리를 두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그게 과연 그들에게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겠다.

미투데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등의 다양한 소셜(온라인 인간관계) 서비스는 접근성이 뛰어나다. 쉽게 관계를 맺고 관게를 끊는다. 그런 편리함 때문일까? 사람들은 스킨 커넥트(Skin Connect) 혹은 상호 목소리를 듣고 시선을 교환하고 손길을 주고 받는 일을 꺼려하고, 온라인 속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SNS 서비스를 즐기고 있지만, 거기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내가 찾는 관계는 그곳이 없는 것인지도...? 요즘은 그 SNS 서비스 속에서 알게된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즐겁다. 

난 고리타분한 아날로그 세대일까?   

 

나는 조금 더... 많이... 사람들의 영역에 부딪치고 그들의 영역에 나의 통행로를 만들고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살아가고 싶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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